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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사도, 더 행복할 수 있을까?

by 누에트 2025. 4. 8.

소비 침체 시대에 다시 생각해보는 ‘행복의 방정식’
'요즘 뭐 사는 재미도 없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물가는 끝없이 오르는데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대출이자는 높아지고 있다. 과거엔 월급날이면 소소한 사치를 부리거나, 충동적으로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지만, 요즘은 클릭한 장바구니를 열어보지도 못한 채 다시 닫아버리기 일쑤다.

경제 지표는 ‘내수 침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들의 지갑은 닫혔고, 유통업계는 할인 행사를 거듭해도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삶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더는 많은 소비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적게 쓰더라도 더 깊이 있는 만족을 추구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그 흐름을 따라가 보려 한다. 덜 사는 시대, 우리는 진짜로 덜 행복해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일까? 그 사이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행복의 방정식’을 함께 생각해보자.

덜 사도,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덜 사도, 더 행복할 수 있을까?

1. 소비가 줄어든 시대, 행복도 함께 줄어들었을까?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의 소비 심리는 뚜렷하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대출 부담은 커졌고, 물가 상승은 일상 곳곳에서 체감됐다. 식비, 교통비, 주거비 등 고정비 지출이 늘어난 가운데 여가·쇼핑·취미 등에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주요 대형 유통업체의 월별 매출도 2023년 말 대비 감소세를 보였고, 자영업 폐업률도 함께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만 놓고 보면, 사람들의 삶은 분명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비 습관의 변화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위축'이라기보다는 '재정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때가 많다.

많은 이들이 과거처럼 무조건 소비를 늘리기보다, 필요한 곳에만 정확히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나를 위한 건강식품, 삶의 질을 높이는 작은 인테리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취미 용품 등, 소액이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쓰는 ‘선택적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는 실용과 감성의 균형을 중요시하며, 소비를 단순한 거래가 아닌 '자기 돌봄'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예전처럼 ‘많이 쓰는 사람=행복한 사람’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출은 줄었지만,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변화는 ‘소비와 행복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다.

 

2. ‘적은 소비, 깊은 만족’이라는 새로운 공식

그렇다면 어떤 소비가 사람들에게 진짜 만족을 줄까? 최근에는 단순히 가격이나 브랜드보다 ‘가치’와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 쇼핑몰 대신 동네 소상공인의 제품을 선택하거나, 일회성 소비보다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에 투자하는 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경제적 상황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소비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것을 사는가?”, “이 지출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소비를 하나의 ‘행동’이 아닌 ‘철학’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 것이다.

이와 함께 떠오른 키워드 중 하나는 ‘소확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이 개념은 거창하지 않지만, 일상에 분명한 만족감을 주는 순간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직접 만든 한 끼 식사, 조용한 공간에서 읽는 책,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시간 등이 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위해 쓰는 소비는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큰 가치를 지닌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절제된 소비’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문화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명품 언박싱이나 해외여행 브이로그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소박한 데일리템, 정리정돈, 자급자족형 취미 등으로 중심이 옮겨가는 중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덜 써도, 더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국 진짜 행복은 소비의 양이 아니라, 그 소비가 내 삶과 얼마나 조화롭게 연결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3. 소비의 변화, 행복의 재정의

소비의 흐름이 바뀌면서 기업과 시장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가격 경쟁이나 물량 공세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가치소비’와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환경 포장, 윤리적 생산, 지역 생산자와의 협업 등 소비자들의 감정적 만족과 도덕적 기준을 함께 만족시키는 브랜드가 사랑받고 있다.

또한, 많은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철학이나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을 사고파는 거래를 넘어서, 그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소비가 단지 물건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흐름 속에서 ‘행복’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외적인 조건, 소유의 크기, 소비의 양으로 평가되던 행복이 이제는 내면의 안정감, 관계의 질, 삶의 균형 같은 지표로 옮겨가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줄어들었어도, 일상에 집중하고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지금, ‘소비 중심의 삶’에서 ‘가치 중심의 삶’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덜 사는 시대지만, 그 덕분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소비는 우리 삶을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그 자체가 행복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비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더 깊고 단단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